하마터면 그라나다 여행을 하는데 알함브라 궁전을 들어가지 못 할 뻔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답게 방문객 하루 인원제한이 있고, 티켓을 확보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알함브라 궁전을 뺀 그라나다 여행을 할 뻔 했으나, 투어 신청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가이드는 단체 티켓을 미리 확보해 놓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슬람식 궁전을 접하게 되었다. 부랴부랴 투어일정에 맞추어 궁전에 도착한 후, 알함브라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을 때는 다소 실망스러운 첫인상이었다. 내가 서양식 궁전을 기대한 걸까? 벽돌로 각 맞추어 지어놓은, 누르튀튀한 빛의,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은 머리 속의 궁전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만난 궁전의 정원들. 그 완벽히 고즈넉한 모습에, 알함브라 궁전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금방 잊혀졌다. 기둥, 수목 등이 자로 잰 듯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 넓지 않는 안뜰이지만, 기묘한 위엄과 권위가 느껴진다. 사람은 많고 공간은 좁아 사진을 찍는 것이 여의치 않다. 한국에서 광각렌즈를 가져 오지 않은 멍청한 나를 원망한다.
알함브라 궁전의 건물들은 멀리서는 단순한 형태의 블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건물들에 조금만 시선을 가까이 하면, 세밀하고도 화려한 문양과 양식들을 접할 수 있다. 어느 한 구석 단순한 부분이 없다. 방안의 천장, 벽, 문의 아치들 하나하나가 세련된 매력을 뽐낸다.
궁전, 왕궁 관광의 묘미 중 하나는 왕족들이 어떻게 생활하였는지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복궁 근정전에 왕이 앉아 있는 모습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 방에서 연회를 즐기다 방으로 돌아온 왕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알함브라 궁전에서는 그런 종류의 상상력이 발휘가 되질 않는다. 이슬람 문화에 무지하기도 하거니와, 그들이 쓰던 가구나 장식장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어디서 누웠는지, 어디서 앉았는지 등을 떠올려보기가 힘들다.
이슬람 건물 일색인 궁전 속에서, 눈에 띄게 구분되는 건물이 하나 있다. 찰스5세 궁전이라고 불리는 건물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그는 이교도의 궁전 한 복판에 기독교식 건물을 알박기 하듯 지어 놓았다. 겉은 사각형 건물인데, 안은 원형의 구조인 독특한 형태이다.
입구로부터 가장 떨어진 곳에 알카사바가 있다. 이 지구는 알함브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으로 군사적 성곽 겸 요새이다. 요새이니만큼 높은 곳에 높게 지어놓아, 주위를 조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여름 별궁으로 휴식용 별궁인 헤네랄리페는 계절을 많이 타는 곳이다. 여름 별궁이라 여름에 피는 꽃만 심어놨는지, 12월에는 꽃이 한 송이도 없다. 겨울에 가장 아름답지 않은 곳이라 한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니콜라스 광장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경사진 언덕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식으로 광장에 도착했든 사람들의 행동을 판박이처럼 똑같다.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지만, 멀리서 보니 또 직각의 깍두기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 깍두기 속에 세련됨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노란 빛의 궁전이 마음속에서도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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