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의 식당들은 유명하다. 안 좋은 쪽으로…… 그러니까 맛이 없기로 유명하다. 어느 식당을 가도 만족하기가 힘들다. ‘뭐 맛이 훌륭치 않더라도 적당히 먹을 정도만 되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만, 그것은 식사비용이 저렴했을 경우이다. 사이판은 미국령이라 식비가 비싸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못 한데다 가격까지 비싸면 식당주인뿐만 아니라 사이판이라는 섬 자체가 미워지기도 한다.
아래의 식당들은 사이판을 여행하며 방문했던 식당들 중, 그나마 식당이 괜찮거나 혹은 인상 깊은 특징이 있는 곳들의 리스트이다. 위에서 아래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곳부터 내림차순으로 순서대로 나열하도록 하겠다. 음식이 맛있고 없고는 취향문제이니, 식당 순서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님을 미리 밝힌다.
이런 종류의 글에서 으레 쓰이는 별점은 쓰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순위를 정하다 보면 뒤로 갈 수록 별점이 줄어들어 종국에는 한 개나 두 개가 될 텐데, 마지막 식당이 그 정도로 엉망은 아니기 때문이다.
1. 스파이시 타이 누들 스테이션
사이판에 있는 5일 동안 재방문 했던 식당은 호텔 조식 뷔페와 이 식당뿐이다. 남태평양의 미국령 섬에서 로컬음식이나 미국식음식이 아닌 타이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니 뭔가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뭐 어떠한가 이 글로벌시대에.
푸팟퐁커리, 쌀국수, 팟타이 모두 훌륭하다. 소금간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인 입맛을 저격했고, 미원이라도 뿌렸는지 음식들의 감칠맛이 일품이다.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모든 메뉴 선정에 실패 없이 성공한 식당이라 자신 있게 권할만한 식당이다.
2. 쉑
렌터카가 없다면 다소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저녁장사 없이 아침 점심 영업만 하기 때문에, 아침에 늦장 부리다가는 매정한 “CLOSED” 간판을 보고 뒤돌아 서는 수가 있다. 평일에는 오후 두시까지, 토요일은 열두시까지 영업하고, 일요일은 쉬는 날이다.
메뉴는 미국식 아침식사가 주력이다. 팬케익과 크레페를 중심이고, 보울메뉴와 샐러드 메뉴가 소수 준비되어 있다. 철저히 아침, 점심 장사를 겨냥한 메뉴구성이다. 스무디메뉴가 있는데 메뉴들 이름이 미국 만화 영웅들 이름이다. 초콜색 스무디는 슈퍼맨스무디, 바나나는 울버린스무디란다. 초록색의 헐크스무디를 제외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작명법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적절한 가격에 적절한 맛. 오늘의 메뉴였던 로코모코는 그 요리의 종주국인 하와이에서 먹었던 것 보다 훨씬 맛있었다.
3. 서프클럽
‘관광객이 많은 휴양지 해변에 있는 식당’ 의 전형이다. 이 식당을 표현하자면, 사람들이 붐비고 해변을 끼고 있어 풍광이 좋으나 맛이 없다. 서프클럽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인테리어로 왠지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와야 할 것만 같다. 야외 테라스 석도 있지만, 무척이나 덥고 내리쬐는 뙤약볕 탓에 누구도 밖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이 식당을 세 번째로 소개하는 이유는 순전히 그 풍경 때문이다. 특히나 석양이 질 때의 모습을 보면 ‘이 맛에 휴양지 오는 거 아니겠어’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사이판 최고의 노을을 이 곳에서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곳에서 하는 식사. 흙을 씹어도 맛있어야 하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이 식당의 음식은 단도직입적으로 맛없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서프클럽 음식의 사진을 보면, 아름다운 석양과 바다 그리고 음식값이 아까워지는 영수증이 먼저 떠오른다.
4. 아메리카 피자 앤 그릴
미국식 피자점이다. 가장 큰 장점은 접근성. 가라판의 티 갤러리아에서 도보로 오분 정도면 식당에 도착할 수 있다. 콩카페 옆이다. 한국인이 많이 가는 콩카페 옆의 식당이라 그런지 한국어 메뉴판도 구비되어 있다.
이 곳에 온 이유는 순전히 시내에 요란스러운 간판을 달고 있어서 이다. 관광객 수만큼의 현지인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종종 현지인들이 피자를 포장 구입해가는 걸 보니, 대중없이 들르긴 했지만 잘 선택했구나 싶다. 비가 오는 날에 먹는 빈대떡에 막걸리처럼, 비 오는 날 사이판에서는 피맥이 맛있다.
5. 부바검프쉬림프
가라판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어, 사이판을 간다면 못 볼 수가 없는 식당 중 하나이다. 하와이에서 만나 보았던 식당을 사이판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다. 포래스트 검프는 모티프로 하는 요란스러운 인테리어, 웨이터를 부르는 용도로 쓰인 RUN/STOP 사인이, 신혼여행으로 갔던 하와이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다른 점은 메뉴판. 한국인이 많이 찾아오는 사이판답게 자리에 앉자마자 당연하다는 듯이 한국어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또한 SKT 통신사를 이용하고 있다면, 할인이나 꽁짜 메뉴를 준다. 타국인들에게도 그런 서비스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웨이터의 서비스가 한국인 친화적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은 하와이 때와 동일하게, 비싸고 적당히 맛있고 배부르고 그리고 너무 비싸다. 두 명이 가서 음료와 메뉴를 두 개 시키는 십만 원 정도. 하와이에도 있는 식당이라 하와이 물가가 적용되나 보다.
6. 긴파치
사이판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해온 일식집이다. 배틀트립이라는 여행 예능 방송에서는 출연자가 이 식당에서 참치회를 먹고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기도 했다. 가라판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도 용이하다. 메뉴판에 한글, 중국어, 일어, 영어가 모두 병행표기 되어 있어, 주문이 용이하다.
꼬치구이와 참치회도 맛있다. 방송에 나온 것처럼 감탄을 거듭하는 정도는 물론 아니다. 꼬치들의 양념이 간간하게 잘 되어 있어 맥주와 함께 먹기에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식당을 가장 나중에 소개하는 이유는 식당의 환경 덕이다. 옆에서 꼬치를 굽는데 배기 후드가 작동을 하지 않는 건지, 냄새로 행인을 유혹하려는지 연기가 이리저리 날린다. 식사를 마칠 때쯤에는, 온몸이 골고루 훈제가 된다. 그리고 에어컨이 없어서 덥다. 더운 곳에서 꼬치구이를 숯 연기와 먹는 샘이다. 유황불이 끓는 지옥이 연상된다. 가장 최악은 파리이다. 음식에 자꾸 파리가 꼬인다. 처음에는 한 두마리가 보이더니 온동네에 소문이 났는지, 다 먹을 때 즈음에는 서른 마리는 족히 되는 파리들이 내 밥상 위에서 파티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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