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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후감

김훈, 하얼빈

 포수, 무직, 담배팔이가 구한말 일본제국의 일인자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다. 열사 안중근의 이야기이다. 알려져 있는 이야기라 내용적으로는 평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틀렸다. ‘천주교’가 의외로 깊숙이 이 사건의 정신적 부분에 개입하고 있었다. 뮈텔 주교와 빌렘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세력이 안중근 사건에 관여 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르러서야 천주교의 잘못된 과거에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 굉장히 의외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압축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였다. 최대한 인물, 사건, 사물에서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안중근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그리하여 김훈 작가가 보여준 안중근은 어릴 적 읽던 위인전의 안중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포수였고 무직인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감정적인 거리감을 둠으로써 위인전의 비현실적인 안중근이 아니라, 있었을 법한 안중근이 그려졌다. 고종, 순종 왕들이나 심지어 이토에게서도 저자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종종 악인으로 그려지는 이토는 사라지고, 자신의 목적에 충실한 유능한 인간인 이토, 현실적 이토가 나타난다.

 이토에게 총을 쏘아 이토가 쓰러지는 장면. 너절한 수사를 생략하고 긴 문장과 짧은 문장들을 교차로 배치하여 리듬감을 주다가. ‘하얼빈역은 적막했다.’ 라는 지극히 짧은 문장으로 마지막으로 배치시킨다. 문장의 리듬으로도 서스펜스가 느껴진다. 대단한 글솜씨이다. 작가의 글이 일전에 이순신을 표현한 것처럼 안중근을 그려내는 스타일 또한 탁월하다.

 

하얼빈은 적막했다.
코레아 후라
러시아인 사진사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이며 닷새 후에 와서 사진을 찾아가라고 말했다. 닷새 후에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안중근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