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해가 생각보다 일찍 저문다. 겨울이 성큼 다가왔는가 보다. 코 끝을 얼리는 추위만큼이나 걱정되는 것은 연말, 연시에 더불어 다가오는 기념일이다. 크리스마스, 12월 31일 혹은 신정. 그리고 또 다가올 발렌타인데이… 연인, 부부의 카드를 매년 강탈하는 피할 수 없는 상습범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사랑을 하려면 로맨틱한 분위기가 필요하거늘…
본 글은 기념일을 정면돌파하기 위한 부산의 식당추천이다. 한끼에 십만원 이상의 다이닝코스를 소개하려 하며, 가성비라는 이름아래 지혜롭게 보내기를 위한 글은 절대 아님을 글 서두에 미리 밝히고자 한다. 파인다이닝으로 십만원대의 가격은 비싸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한끼에 십만원이상은 중산층 서민에게는 분명 부담이 되는 가격이기에…
비스트로 한은 해운대 그랜드 호텔의 1층에 위치한 식당이다. 이 호텔은 해운대에 위치한 오성급 호텔로서 개관한지 26년된 호텔이다. 2005년 APEC 공식호텔, 2008년 부산영화제 본부호텔 등 다양한 국제행사를 치러낸 바 있는 부산을 대표하는 호텔 중 하나이다. 짧게 말하자면, 기념일이 아니면 올 일 없는 곳.
으리으리한 내부이다. 달항아리를 화분으로 이용한 인테리어 소품들이 많다. 소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다
예약할 때에 미리 BYO로 와인 한 병을 까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미리 와인잔이 세팅되어 있었다. 콜키지는 3만원의 차지를 받는다. 로맨스를 위해 삼만원을 과감히 투자.
저녁코스 메뉴를 주문하였다. 가장 비싼 한오름 코스. 두당 십이만원. 다이닝으로는 구만원짜리 해오름 코스도 있었으나, 기념일에 가오가 빠질 수 없으니 한오름으로 선택하였다.예약 때 미리 해오름으로 두명분을 예약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기념일이니 쿨하게 넘어가도록 하자.
코스 구성은 한식위주이나, 실제 메뉴들은 전통적인 한식이 아니라 캐쥬얼한 한식에 가깝다.
가장 처음 상에 오른 주전부리. 땅콩 나물 튀김, 김부각 육회, 만두피 튀김 랍스터. 플레이팅부터 눈이 즐겁다. 하나씩 맛 볼 때마다, 우와 하는 감탄사 밖에 나오질 않는다. 그 탓에 주전부리 코스부터 와인을 두잔 이나 마셔버렸다.
특히나 김부각 육회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할 정도의 맛. 부각 사이에 육회를 넣다니, 대단한 센스이다.
다음의 계절죽으로는 율란죽이 나왔다. 알밤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뜨뜻한 밤죽이 앞으로 올 요리들을 대비해 위장을 잘 예열시켜 준다.
새우냉채와. 새우냉채의 소스는 잣으로 만든 소스이다. 냉채와 잣이 의외로 궁합이 좋았다. 그리고 무 아래 숨겨진 회는 광어 선어회이다.
가리비구이. 관습적으로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소스를 섞어 낸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들기름이다. 해산물에 들기름을 곁들이니, 당장 다음부터는 회 먹을 때 들기름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 즈음 와인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옥돔구이. 다시마 데리야끼 소스를 바닥에 깔고 있다. 옥돔 위에 올라간 만가닥 버섯이 너무 귀엽다. 소스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이제는 감도 안잡힌다. 다시마로 어떻게 해야 이런 소스를 만들 수 있을까?
이제 고기 메뉴. 고기메뉴가 나오는 것을 보니, 식사가 끝나가는 것이 보여 이때부터 아쉬워지기 시작한다. 소금은 신안 함초 소금이고, 소스는 단호박으로 만든 퓌레. 고기는 메뉴판대로 한우 꽃등심이다. 사실 소금과 퓌레보다, 송이와 한우 등심을 같이 먹는 것이 더 즐거웠다. 고기 코스 내내 코에서 계속 좋은 향이 난다. 가져온 와인은 이 코스에서 끝이 났다.
고기 다음으로 식사류, 성게비빔밥과 국이다.
이미 점심에 성게비빔밥을 먹은 터라, 하나는 국수로 교체 주문하였다.
마지막 메뉴인 디저트와 차. 막걸리 아이스크림과, 누룽지 티라미수이다. 차는 커피와 녹차.
정신없이 음.. 음.. 우와.. 하다 보니, 어느덧 가져온 와인은 이미 동이 났고 식사도 끝이 났다. 코스요리의 좋은 점은 같이 상대와 오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술도 곁들였으니, 기념일을 맞은 연인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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