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더위가 가실 무렵의 초가을, 단풍이 오기 직전에는 억새가 아름답다. 영남권에서 억새 하면 떠오르는 곳은 영남알프스이다. 영남알프스는 신불산, 영축산, 재악산, 능동산 등 태백산맥 끝자락에 있는 산악군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영남알프스 주변의 등산로는 하늘억새길이라고 불리고 단조성터길, 달오름길, 단풍사색길, 억새바람길과 같은 코스들이 조성되어 있다. 등산이나 하이킹이 목적이 아니라, 억새가 산행의 목적이라 가장 쉬운 코스인 간월재로 떠나게 되었다.
여느 산행이 그렇듯이 간월재를 가는 방법에는 여러 길이 있다. 그중 가장 가벼운 산행길을 고르라면 배재2공영 주차장에서 오르는 방법이다. 인터넷 블로그에는 이 코스로 유모차를 끌고 산행한 후기들도 있을 만큼 가벼운 코스이다. 그리고 실재로 내가 이 코스를 오를 때도 다수의 유모차를 보았다. 세상 모르고 곤히 자는 아이들을 들쳐 업고, 산을 오르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유모차를 끌고 올 만큼 쉬운 산행은 결코 아니다. 산 허리 아래로 많이 보이던 유모차의 숫자가 간월재에 가까워 질수록 줄어드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코스로 진입하면 초반의 짧은 구간은 시멘트 포장된 편안한 길이다. 유모차 부대에게 그럴듯한, 헛된 희망을 품게하는 포장길이다. 그러나 곧 비포장길이 이어진다. 비포장길이지만 경사가 가파르거나 험한 돌밭길은 아니다. 간월재까지 트럭이 오르내릴 정도로 평평하고 완만하다. 그러니 체력만 좋다면 유모차를 끌고 올라가는 것이 영 말이 안되는 짓은 아니다. 물론 추천하지는 않는다.
억새를 보러 왔지만, 간월재로 가는 동안에는 억새풀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단풍도 오기 전이라 눈이 심심하기도 하다. 내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수풀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나와 볼거리를 선사해 준다.
등산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풍경이다. 오르는 과정이 고달플 수록,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코스는 조금만 올라도 주변의 산들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 뛰어나다. 멀리 보이는 산새들이 기분을 맑게 해준다. 산중의 소확행이다.
가는 길에 억새가 하나 둘 보이면, 그것은 간월재에 거의 다 왔다는 신호이다. 간월재 휴게소가 보이면, 그 너머로 가을 논밭같은 누우런 억새밭을 볼 수 있다. 눈 앞에 보이는 금빛 억새의 장관은 집에서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등산의 묘미는 산중에서의 식사이다.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있다. 사람이 많은 만큼 간월재 휴게소에서는 컵라면이 불티나게 잘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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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재는 말 그대로 산정상인 ‘봉’이 아니라 고개인 ‘재’이기 때문에, 산 정상으로 이르는 길이 있다. 신불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간월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다. 식사 후 정상으로 가는 길을 조금 오르고, 억새밭을 내려 보다가 이내 아래로 발걸음을 돌렸다. 억새밭은 적당한 거리에서 멀어지면 그 아름다움을 잃었다. 애초에 등산보다 억새가 목적이었기에 억새밭 근처에 맴돌다가 이내 하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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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밥먹고 쉬고 내려오는데 까지 세시간 남짓 소요하였다. 그리고 등산로로 가는 산아래에는 흔히 있는 파전, 도토리묵, 닭백숙을 파는 식당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음식을 미리 든든히 준비하는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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