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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후감

‘23 독서 결산! + 인상 깊은 책 Best 5

지난 해 읽은 책은 56. 2022년의 49권과 비슷한 양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인 독서 목표 중 하나였던 수호지 (이문열 평역)를 다 읽기를 완수했다. 열 권짜리 책이라 완독이 쉽지 않았다. 6,7권 쯤 읽을 때는 중국 고전문학이 주는 특유의 반복성과 지겨움 때문에, 책을 덮을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허나 읽어 놓은 게 아까워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주해버렸다. 송강이 사로잡은 호걸을 화를 내며 포박 풀기, 노지심과 이규의 개망나니 짓, 일기토에서 거짓 도망 등같은 플롯이 끝없는 돌림노래처럼 반복되어 내 참을성을 시험했다.

원래 좋아하던 추리소설도 꾸준히 읽었다. 학창 시절 이 후로 간만에 읽은 애가서 크리스티의 작품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다섯 마리의 돼지]은 여전히 훌륭했고, 그녀를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숭배하게 만든다. [사탄 탱고]는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어려운 책이다. 당최 이 책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인터넷에 실린 관련 글들을 읽어보아도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의 문학 수준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읽은 책에 기록해둔 주관적인 별점으로 판단해보면, 작년보다는 인상 깊은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중 가장 나에게 와 닿은 다섯권을 소개한다.

 


1. 폴 오스터 [달의 궁전]

태양은 과거이고, 지구는 현재이고, 달은 미래다.

“알고 보니 그가 내 핏줄이었다.” 라는 진부한 장치를 한번 꼬아 교묘하게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냈다. 전에 읽었던 <빵 굽는 타자기>에서 맛보았던 글 솜씨는 여전하다. 독자를 공감시키는 문장들이 심지어 위트까지 있다. 모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 독자들이 애정을 둘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도 작가의 힘이겠다.

 

2. 위화 [인생]

어린 시절엔 빈둥거리며 놀고, 중년에는 숨어 살려고만 하더니, 노년에는 중이 되었네.

중국의 문호 위화의 작품이다. 입체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한량이고 한심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과 그 가족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허삼관 매혈기]와 공통점이 있다. [인생]에 보여지는 주인공의 삶은 헛헛하다. 인생의 의미를 캐고자 하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기구한 인생을 작가가 보여줄 뿐이다.

 

3. 제이슨 펑 [비만코드]

핵심은 열량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비만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인슐린을 낮출 수 있는가’ 이다.

내가 가진 상식이 많이 무너졌다. 철옹성 같던 칼로리 이론으로는 비만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니! 체중 설정값을 제어하는 것은 체내 인슐린 농도라 한다. 고로 체내 인슐린의 농도를 줄이는 것이 다이어트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인슐린 저항성을 (아주) 긴 시간 동안 줄여 나가야 한다고 한다. 오랜 싸움이 예상된다. 제로 칼로리 음료, 인공감미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여전히 인공감미료에 대한 진실은 뚜렷하진 않지만, 앵간해서는 안 먹는 것이 좋겠다

 

4.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범주는 상상의 산물이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느낌이었다.

전에 읽은 [면역에 관하여], [랩 걸]과 결이 비슷한 책이다. 과학적 사실과 자신의 이야기를 잘 버무려 냈고, 공교롭게도 세 작품 모두 여성 작가의 책이다. 그 중에서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 자신의 서사에 한 가지 축을 더 추가하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실존했던 근대의 과학자 이야기이다. 세 가지 실을 곱게 직조하여 한 이야기를 엮어낸 작가의 솜씨가 기가 막히다. 그리고 반전은 충격적이며, 아직도 나에게 ‘그게 진짜라고?’ 하는 반응을 자아낸다.

 

5. 엘리자베스 콜버트 [여섯번째 대멸종]

인간은 층서학적 흔적을 남길 것이며, 이 시대의 흔적은 수백만 년 후까지 뚜렷이 남아 있을 것이다.

오싹하다. 인간이 지질학적 규모로 지구를 죽이고 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을 통해 경고했지만,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를 제어하는 방법에 서툴다. 국제적 노력과 제도가 만들어지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랄 것이 없어 보인다. 인간이 전지구적 합의를 끌어내어 탐욕을 제어할 수 있을까? 지구 한쪽에서는 아직도 전쟁이 터지는데 그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이 책의 엄중한 경고가 국가와 정치 관계를 너머 받아들여질까? 답 보다는 질문을 많이 내어놓는 책이다. 인간이 하루에 14종의 생물을 멸종시킨다고 한다. 언젠가 그 14종의 생물에 인간이 포함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