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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갈 곳과 먹을 것

목포 여행 ;;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거인의 자취를 찾아서

대한민국 민주국가 역사상 첫 여,야 정권교체 대통령.

대한민국 첫 노벨상 수상자.

대한민국 현대 정치의 거인.


김대중 前대통령을 가르키는 수식어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은 '대한민국 첫 노벨상 수상자'의 주제를 중심으로 김대중이라는 한 인간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기념관은 김 전대통령의 고향인 목포에 위치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관람시간이다. 







항만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위치한 기념관은 주변에 조경도 잘 관리되어 있다. 





기념관 앞으로는 바다가 있지만, 뒤로는 강을 끼고 있다. 그 강에서 카누체험도 가능하다. 다만 유료. 4인 이상이서 방문했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다시금 기념관으로 향하면, 기념관의 주인공이 실사이즈 입간판의 모습으로 방문객들을 환영하여 준다.

 


입간판 뒤로는 국군의날 사열식 때에 탑승한 차가 전시되어 있다. 박정희 측의 사주로 의심되는 트럭 교통사고로 평생을 절름발이로 살아야 했던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속에서는 사열차에서 꼿꼿히 서서 장병들에게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입장하여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또 자동차이다. 밖의 특수차량과는 달리 안에 있는 차는 평범한 세단이다. 퇴임 후 사용했던 차라고 한다. 



그리고 기념품 판매점. 1층은 전시관이 있는 곳이 아니라 위의 자동차와 기념품점이 전부이다. 책, 김대중 명언이 적힌 상품들 등이 팔리고 있다. 왠만큼 김대중이라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 이상은, 딱히 손이 가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서야 전시관의 시작이다. 한쪽 벽면에는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 이름이 주욱 나열되어 있고, 다른 쪽에는 김 前대통령이 목포를 찾았을 때의 사진들과 기념관 건립에 관련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김대중 캐릭터를 지나 전시관 입장. 캐릭터가 본인과 전혀 닮지 않았다. 말년의 얼굴살이 넉넉하게 처진 모습과 작은 눈웃음을 강조하려고 한 듯 하지만, 그냥 다른 사람 느낌.








1관은 노벨상기념관 답게, 김대중 노벨상 수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수상시의 김대통령과 여사의 모습. 캐릭터는 별로 였으나, 이 쪽은 거의 본인이라고 느껴질 만큼 닮았다. 다만 조금 젊은 버전이다. 벽한쪽에는 수상시의 영상이 프로젝트로 비춰지고 있다. 




 

노벨위원회에서 발표한 2000년 노벨평화상 선정 이유문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2000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한국과 동아시아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북한과의 평화에 기여한 한국의 김대중을 선정했다. 한국에서 수십 년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 속에 계속된 생명의 위협과 기나긴 망명 생활에도 김대중은 한국 민주주의 대변자였다. 그가 1997년 대통령에 단선됨으로써 한국은 세계 민주주의 국가 반열에 올랐다. 대통령으로서 김재웅은 민주 정부 체제를 공고히 했고, 한국 내의 화합을 도모하였다. 김대중은 강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인권을 제약하려는 기도에 대항하는 보편적인 인권의 수호자로 동아시아에 우뚝 섰다. 미얀마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동티모르의 억압을 반대하는 그의 역할을 평가할 만하다.

김대중은 햇볕정책을 펼쳐 남북한 사이에 50년 이상 지속된 전쟁과 적대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그의 북한 방문은 두 나라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과정에 주요 동력이 됐다. 이제 한반도에는 냉전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이 싹트고 있다. 김대중은 한국과 이웃 국가, 특히 일본과의 화해에도 기여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북한과 다른 국가 지도자들리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진전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제 2관은 노벨상, 노벨평화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노벨, 노벨상, 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이야기들을 볼 수 있다. 작은 연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재미있는 사진 찍기에 좋다.








제 3관. 김대중의 일대기. 워낙에 굴곡진 인생을 살다가진 분이라, 가장 읽을 거리가 많고 볼거리가 많은 전시관이다. 김대중이라는 한 개인이 얼마나 위대한지 느낄 수 있다. 




죽을 고비를 두번이나 넘겼다. 하나는 전술한 트럭 교통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의 김대중 납치 사건이다. 김대중을 바다에 수장시키려 한 순간 나타났다는 미국 비행기. 드라마보다 더 현실감 없는 이야기이지만, 김대중은 그걸 실제로 겪었다.  




전두환 정권 하, 내란 음모 사건의 주동으로 몰려 사형을 받게되는 순간.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살고 싶었다. 나는 제발 사형만은 면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재판장의 입 모양을 뚫어지게 보았다. 입술이 옆으로 찢어지면 사, 사형이었고, 입술이 앞쪽으로 튀어나오면 무, 무기징역이었다. 입이 나오면 살고, 찢어지면 죽었다. 재판관의 입이 찢어졌다.


"김대중, 사형!"

김대중 자서전 中




가택 연금은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아래서 밥 먹듯이 했다. 가택연금 아니면 망명. 고통스러운 삶이다. 



미국에서 정치적 저변을 넓히고 입국. 입국 하자마자 가택 연금. 입국시 안전을 보장하기가 어려웠지만 그는 기어코 갔다고 한다. 당시에 그의 신변 보장을 위해 지미 카터-레이건 대통령, 요한 바오르 2세가 서한을 보냈다고 한다. 




명문제조기. 독서량이 어마어마 했다고 하고, 하루에 10가지의 신문을 읽었다는 등, 방대한 지식 덕인지 일생동안 명문을 쏟아내셨다. 


"나에게 유일한 영웅은 국민이다. 국민의 최후의 승자이며 양심의 근원이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의 악의 편입니다."

"용기는 최대의 미덕이며 진실에 근거한 웅변은 최고의 무기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려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겸비해야 한다."

"진정한 용기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헌신에서 나온다."






마지막 4관은 대통령 취임후, 이른바 국민의 정부 때에 이러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전시관이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인 만큼 김대중 정부 편향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교적 현대의 정책들이라, 그 업적들을 속단하기는 힘들겠지만, 대체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내용들이다.






곁들여서, 김대중 취임식 연설 영상. 위의 명문들에서 느낄 수 있는 말과 글의 힘이, 연설에서도 느껴진다. 김대중 명연설 중 하나.


올 한해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는 늘어날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 고통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4전시실을 마지막으로 작은 방이 있는데, 대통령 집무실을 재현해 놓은 방이다. 자리에 앉고 테이블에 있는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면, 맞은 편에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개인메일로 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