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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 모음

옛 외가의 기억

아버지 쪽 식구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명절에 큰 집 내려가 뵜던 분들은 촌수가 양 손의 손가락 개수를 훌쩍 뛰어넘는 먼 친척들이었다. 어머니는 형제가 아홉 명이 있고, 그 중 다수가 포항에 살기에 촌수가 가까웠다. 그래서 명절마다 대면대면하고 지루한 큰 집에서 얼른 나가, 왁자지껄하고 가까운 사람이 많은 외가를 얼른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머리가 커져서는 큰 집이고 외가고 얼른 집에 돌아가서 컴퓨터 게임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행각했지만..

외가의 친척어른들과 사촌들 뿐만 아니라, 그 무렵의 외가 집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 70년대에 지어졌을 법한 아주 오래되고, 작은 가옥이었다. 열 명의 형제자매가 자라났다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작은 집이었다. 집 밖에 위치한 푸세식 옥외 화장실, 아궁이가 있는 부엌, 얼마나 지글지글 끓던지 비닐 장판이 꺼매진 아랫목, 삐걱대는 녹슨 힌지가 달린 목재 문, 분명히 과거에는 흰색이었을 누우런 창호지. 내 기억 속 옛 외가의 모습이다. 마당에는 작은 개와 개 집이 있었고, 옛 드라마에서나 종종 보이던 마당 수돗가도 있었다.

외할머니께서 살아계실 적, 명절에 큰 집에 있다가 외갓집으로 오면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열 남매의 남편, 아내 아이들까지 있었으니 규모가 대단했다. 식사라도 한번 하려면 사람들이 앉을 공간이 부족했다. 조를 둘로 나누어 먹기도 하고, 마당에 큰 평상을 여러 개 깔아 잔칫집 마냥 식사를 하기도 하였다. 과음하는 친척 어른들도 없고, 반목하는 친척들도 없어 유쾌했다.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다. 새내기 무렵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오랜 외가집도 무너뜨리고 새로 현대식 집으로 지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 후로는 명절에 모이는 친척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서 내 옛 기억의 외갓집은 현실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뒷 산에 작은 묘 하나가 더해졌지만, 내가 사랑했던 공간은 사라졌다. 이제는 몇몇의 사진 속 그리고 내 기억 속에 불완전하게 존재한다. 어릴 적 살던 오래된 아파트처럼, 추억 속 공간은 하나 둘씩 사라져간다. 이렇게 나이를 먹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