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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후감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추리 소설 장르는 어느 정도 정해진 문법이 있다. 주로 작중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 (혹은 탐정 역할)이 범인을 찾아 내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독자는 작가가 제공한 몇몇 증거품들을 활용해 탐정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느낌을 받으며 책을 읽어 나간다. 결론 부분에서는 범인이 밝혀지고, 그 동기와 과정을 밝혀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준다.

이 단편집 속 많은 작품이 정형화된 추리 소설 장르의 문법을 벗어난다. 트릭 보다 동기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살인이 아니라 자살의 이유를 밝히는 작품이 있기도 하다. 또한 각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범인이 될 만한 인물이 매우 적어, 범인이 누구인지 알기 쉽다. 추리 소설 특유의 범인 찾기는 이 책의 주된 재미 요소가 아니다. 트릭이 없는 오락적 이야기이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이게 추리소설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범인 없는 살인의 밤>이 가장 재미있다. 분량도 단편집에서 제일 길고, 등장 인물도 다수이다. 트릭이 과감하다. 읽으며 계속 의문을 가졌던 '나'의라는 인물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몸에 전율이 흘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접하며, 줄 곧 이 작가의 작품은 영상화 하기에 알맞다라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이 작품만은 단연코 예외이다. 소설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200% 활용해낸 작가의 창의력에 감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