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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조각 모음

올림픽 메달에 드리운 혐오의 그림자

2020 도쿄올림픽. 안산 선수는 양궁에서 세 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신궁의 반열에 오를 만한 쾌거이다. 그런데 한 선수가 세 개씩이나 금메달을 쓸어왔으니 성원을 받아야 함에도 의아한 일이 벌어졌다. 그녀가 페미니스트이니 금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요구가 인터넷 사회에 퍼지고 있다. "!?" 쉽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페미니스트는 금메달의 자격이 없는가?

내가 아는 페미니즘은 성 평등 운동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인데, 그게 어째서 금메달 박탈 사유가 되는 것일까? 그런데 페미니즘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페미니즘의 이름 아래 많은 분파들이 넓은 스펙트럼을 구성하고 있다. 리버럴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 상호교차성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 또 시대에 따라서도 페미니즘의 양상이 달라지니, 페미니즘을 단순한 성 평등 운동이라고 정의하기 힘들어졌다.

정당 정치에 비유하자면, 좌파 성향의 사람들은 우파 정치인들을 수꼴이라 비판하고, 반대로 우파 성향의 사람들은 좌파 정치인들을 좌빨이라 비판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민주주의 아래에 존재하는 정당이라, 어느 누구도 민주주의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가 널리 인정받는 절대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은 그렇지 못했다. 페미니즘 운동이 전체 사회의 동감을 얻기 전에, 한 분파가 심각한 과오들을 범하였다. 한국에서 워마드, 메갈리아 등의 급진적 페미니즘 단체는 미러링 이라는 이름아래 남성혐오를 드러냈다. 그들은 심지어 불법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사건들이 페미니즘 운동이 사회적 공감을 얻어내는데 장애물로 작용했다. 또한 반복적으로 도를 넘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중이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비판이 대상이 페미니즘 자체가 되었다.

남성 혐오가 페미니스트 혐오를 야기했다. 혐오에 혐오가 꼬리를 물었다. 이제는 세 개의 금메달을 딴 신궁 마저 혐오의 대상이 된 지경이다. 극혐, 남성혐오, 페미혐오, 노인혐오, 아동혐오 등 몇 년 사이에 혐오에 관한 신조어가 많이 늘고 쓰인다. 사회에 혐오가 퍼지는 것을 반증한다. 최근 미국에서 아시아인 대상의 혐오 범죄가 늘고 있다는 뉴스가 늘고 있다. 전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널리 퍼뜨린 차별과 혐오의 씨앗이 악의 열매를 맺고 있다. 안산 선수의 사건을 이용하여 한국 정치권에서도 차별과 혐오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한 쪽은 극렬한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다른 한쪽은 그들의 남성 혐오를 비판한다. 혐오의 씨앗이 심어지기에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이 혐오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허나 많은 대선 후보들이 혐오를 이용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 되고 있다. 실망스럽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 환경에, 혐오의 씨앗을 심을 리더가 선출되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다.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차별들을 없애고, 평등의 길로 이끌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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