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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 갈 곳과 먹을 것

청도 여행 :: 날씨 좋은 날 걷기 좋은 청도 읍성

청도 관광지 삼형제인 프로방스, 소싸움 경기장, 와인터널과 함께 나들이 하기 좋은 곳이 하나 있으니, 바로 청도 읍성이다. 앞의 삼형제 보다 유명세가 살짝 덜한 탓에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좋다. 하지만 주말에 날씨가 좋다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온다


읍성을 찾아가면, 읍성 뿐만 아니라 주위에 석빙고 공북루 등 옛 건축물들이 소복히 모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청도 읍성(淸道邑城)은 경북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동삼리, 동천리의 읍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청도읍성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읍지』의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1570보(1880m)이고, 높이는 5자 5촌(1.7m)이었다고 하나, 일제시대 때 읍성 철거정책에 따라 대부분이 헐리었고, 지금은 성벽의 바닥과 일부만이 남아있다. 성의 평면형은 사각형에 가까우며, 동·서·북쪽에 문터가 남아 있다. 청도읍성은 고려 때부터 있었으며, 당시에는 돌과 흙을 섞어 쌓은 것이었는데, 조선 선조 23년(1590)에 돌로 고쳐쌓아 선조 25년(1592)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청도 읍성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 청도읍성(淸道邑城)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선상지(扇狀地)에 축성된 석축성(石築城)으로서 산성(山城)과 평지성과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성이다. 읍성(邑城)의 평면형태는 방형(方形)이고 성벽(城壁)은 자연석을 이용한 협축벽(夾築壁)이며 북·동·서벽의 중앙에 성문(城門)이 구비되었다.

읍지(邑誌)에 의하면 여장(女墻) 600첩이라 했다. 이 읍성(邑城)은 원래 토축성(土築城)이었던 것을 선조(宣祖) 23년(1590)에 석축형으로 고쳤다. 그러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동·서·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다. 그 후 성벽의 수축(修築)과 문루(門樓)의 재건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의 읍성철거정책(邑城撤去政策)으로 다시 성벽이 헐리고 문루도 제거 되었다. 현재는 도시의 확장으로 성벽일부와 기저(基底)만이 남아 있다.


제다이위키 발췌


[링크 :: 경상북도 문화재 홈페이지_청도 읍성]

 이 성은 청도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화양읍의 평지(平地)에 축조된 성으로서 북으로는 청도천(淸道川)이 돌아 동남쪽으로 흘러 동창천(東倉川)과 합류한 후 밀양강(密陽江)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다시 남으로 흘러 낙동강(洛東江)에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성의 남쪽으로는 청도의 진산(鎭山)인 해발 870m의 남산(南山)을 멀리 등지고 있다.

 청도읍성은 고려 때부터 있었으며 당시의 성은 석축(石築)과 토축(土築)을 혼합해서 쌓은 성으로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객관(客館), 유향소(留鄕所), 군기고(軍器庫) 등의 건물과 청덕루(淸德樓), 죽서루(竹西樓) 등의 누정(樓亭)이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화양읍 서상리(西上里), 동상리(東上里), 교촌리(校村里)를 둘러싸고 있던 청도읍성은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1590년(선조 23) 수축에 착수하여 1592년(선조 25)에 준공하였다. 이는 당시 임진왜란(壬辰倭亂)에 대비하여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에 가까운 주·군에 소속된 성지(城址)를 일제히 수축 또는 신축하는 과정에서 청도읍성 역시 가까이 있는 오례산성(烏禮山城) 등과 같이 당시 군수 이은휘(李殷輝)에 의해 토성에 석축을 쌓아 올리고 여장(女墻)을 쌓았으며 성의 높이도 더 높히게 되었다. 당시 청도읍성은 주위가 1,570보(步)이고 높이는 5자 5촌(1.65m), 여장이 600척(尺)으로 동, 서, 북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이 읍성을 점령하고 내성을 소규모로 축성하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알 수 없으며 그 후 왜란으로 불타 버린 읍성은 동·서 두 문만 남아 있었는데 1669년(현종 9)에 군수 유비(兪秘)가 서문을 건립하고 무곤루(撫滾樓)라 하고, 동문은 1708년(숙종 34) 군수 임정(林淨)이 건립하고 봉일루(捧日樓)라 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다시 성벽이 헐리고 문루(門樓)도 제거되어 지금은 동문의 일부 흔적과 성벽의 기저부만이 약 800~900m 남아 있을 뿐이다.

 성곽의 평면형태는 방형이고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는데 여장은 붕괴되어 지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읍성은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형인 평산성(平山城)에 속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성벽의 훼손되고 동문지(東門址)를 포함한 동쪽 성벽일부가 남아 있어 그 흔적을 살필 수 있다.

경북문화재 홈페이지 발췌


청도 읍성

 읍성은 지방광아가 소재한 고을의 방어를 목적으로 축성된 성곽이다. 청도읍성이 처음 축성된 시기는 명확히 알 순 없으나, 고려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며, 현재의 규모는 조선시대 선조 년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선조 때의 왜란에 대비하기 위해 동래에서 서울로 향하는 주요 도로변에 성을 수축하였는데 청도군수 이은휘가 선조 23년 시작하여 2년 후 완공하였다. 둘레가 1570보, 높이가 5자 5촌이며 동문, 서문, 북문이 있었다. 임진왜란과 여러 번의 화재로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수 차례 개축하여 읍성을 유지하여 왔고, 고종 7년 남문을 건립하여 4문을 갖추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도시화와 도로개설로 문루는 철거되고 성벽 일부는 훼속되었으나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청도읍성은 성의 기저부가 전역에 걸쳐 남아 있고,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자세한 기록이 있어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북물을 중심으로 성벽과 옹성 등 성곽을 복원해 나가고 있다. 

읍셩 내 알림판


계속 복원 및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라 통행 우회를 알리는 표시가 되어 있다. 




석빙고로 향하는 길은 좋은 잔디밭으로 덮혀 있는데, 가족이나 연인들이 피크닉 오기 좋은 곳이다. 저 너른 반석이 식탁처럼 쓰이거나 혹은 의자처럼 쓰이기 좋아 보인다. 




그리고 보이는 석빙고. 무려 전국의 6개의 석빙고 중 최고(最古)의 석빙고라 한다.


청도 석빙고 


보물 제323호, 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85

 

 이 석빙고는 조선 숙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겨울철에 자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봄, 여름에 사용하기 위한 얼음 저장고였다. 석빙고의 입구 좌측에는 동왕 39년에 세운 비가 있어 축조연대 및 인력과 공정 기간 등을 알 수 있다. 

방실 바닥은 길이 14.75미터 폭 5미터의 정방형 구조인데 내부는 계단을 통하여 안으로 들어 갈수록 점차 경사졌고 중앙에는 배수구가 있어 경사를 따라 물이 외부로 배출되게 되어 있다. 다듬은 돌로 윗 부분은 반원형인 홍예로 들어 올리고 잡석으로 벽을 쌓았다. 현재 전국적으로 6기의 석빙고가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이것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출입을 통제하는 팻말이 있을 뿐 다른 적절한 바리케이트가 없다. 혹여나 정신 빠진 이상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문화재를 훼손시킬까 걱정이다. 







읍성 앞쪽에 나란히 있는 선정비들. 나라에서 관리에게 내리는 일종의 표창장이라 한다. 표창으로 마을에 비석을 세워주었으니, 관리 참 할 맛나겠다. 


청도 선정비군


 선정비는 선정을 베푼 관리를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 곳 선정비군의 비석들은 읍성 외곽 서상리, 동천리, 남성현 등 주요도로변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석이 있던 주변 도로가 확장되면서 발견된 비석들을 도주관으로 옮겨 보관해오다 2008년 청도 읍성 동문지 주변으로 이건한 것이다. 시대는 1675년부터 1904년까지 조선시대에 건립된 거스오 관찰사 2기, 군수 25기, 찰방 3기로 모두 30기이다. 


선정비군 소개



읍성아래 작은 연못들과 그 너머 과수원이 눈에 띈다. 과수목에 핀 꽃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왕눈이가 살 것만 같은 무지개 연못이다>







북문과 북문 옆에 놓인 작은 다리. 쌔삥이다.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문으로 들어가 보면, 토성위에 석벽이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성벽 바깥쪽으로 보이는 동네 어르신들 스포츠 경기. 게이트볼장. 나도 늙으면 저걸 하게 될까? 미리 연습해둘까?  평화로운 풍경이다.



그리고 벽아래로 보이는 말 예술품과 무슨 용도인지 모를 작은 한옥집 하나. 






전체적으로 아직 완전히 복원되고 정비된 모습은 아니지만, 무언가 공사가 계속 진행되는 곳이다. 성벽 내외가 정리되고, 관광 컨텐츠가 확보된다면, 청도 관광지 삼형제를 위협할 강력한 다크호스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