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하면 꼭 들러야 할 곳 중 하나인 오죽헌. 조선 중종때 지어진 건물로서 무려 보물이다. 165호. 이 곳이 둘러보기 좋은 이유는 오죽헌 뿐만 아니라, 주변에 문성사, 어제각, 강릉시립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알쓸신잡에 나온 유명한 오죽헌 소개문을 볼 수 있었다. 유시민이 울분을 토해 마지 않던 소개글
강릉 오죽헌
보물 제165호
오죽헌은 우리나라의 어머니의 사표가 되는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또한 위대한 경세가요 철인이며 정치가로서 구국애족의 대선각자인 율곡 이이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사임당 신씨는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어려서부터 경문을 익히고 문장, 침공, 자수 뿐만 아니라 시문, 그림에도 뛰어나 우리나라 제일의 여류 예술가라 할 수 있으며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율곡 이이 선생은 어려서 어머니에게 학문을 배워 13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명종 19년 생원시, 식년문과에 모두 장원급제한 후 황해도 관찰사, 대사헌 등과 이조 형조 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조선 유학계에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로서 기호학파를 형성했고 당쟁의 조선 10만군대의 양병을 주장하였으며 대동법, 사창의 실시에 노력하였다. 글씨, 그림에도 뛰어났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문묘에 종사되었고 손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파주의 자운서원, 강릉의 송담서원 등 20여개 서원에 제향되고 있다.
오죽헌은 강릉 유현인 최치운의 창건으로 아들 응현은 사위 이사온에게 물려주고 이사온은 다시 그의 사위 신명화(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또 그의 사위 권화에게 물려주면서 그 후손들이 관리하여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문성사, 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현재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선생의 위업과 교훈을 길이 추앙하게 된 것이다.
자경문 앞 오죽헌 소개문에서 발췌
주차공간은 넓은 편이다. 여유있게 주차하고 매표소로 가자.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한 뒤, 입장.
관람시간이 하절기와 동절기가 다르니 유의하자.
입장하려는 순간 알쓸신잡 촬영하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요즘 가장 핫한 아저씨들이다, 유시민, 유희열, 황교익 아저씨. 지금은 이미 방영이 되었으니 올려도 상관없겠지,, 있으면 지우겠습니다요.
안으로 들어서면, 16세기에 핫했던 아저씨가 두 팔 벌려 손님들은 환대해 주시니, 바로 율곡 이이. 입장하자마자 견리사의(見利思義)의 가르침을 주시니, 과연 성리학의 대가이시다.
오죽헌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위의 율곡 이이이고, 다른 하나는 단연 신사임당. 입구 쪽 화단 이름 마저 초충도화단이다. 하지만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벌레는 많이 없었다. 다행인가?
그리고 최근에 방영되었던 신사임당 드라마 주인공들의 핸드프린팅이 있다. 여름날 저 쇠판에 손을 대면 화상을 입을 것만 같다.
이제 앞뜰을 지났으니, 본격적으로 오죽헌을 둘러보도록 하자. 자경문을 지나면, 오죽헌이 보이는 앞 광장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 곳에서는 예전 5000원권 지폐에 사용된 사진을 직접 찍어볼 수 있다.
입구로 가면, 가장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인 문성사. 원래는 어제각이 있었던 자리였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에 오죽헌 정화사업을 하면서 어제각을 서쪽으로 옯기고 문성사를 새로 지었다.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보이는 현판은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가 직접 썼다고 한다.
문성(文成)은 이이의 시호로써, 인조가 직접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옆으로 보이는 오죽헌. 역시나 신사임당에 관한 모든 설명글은 율곡 이이로 귀결된다.
문성사에는 이이의 영정이, 율곡을 낳았다고 하는 오죽헌의 몽룡실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오죽헌의 트레이드 마크인 오죽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오죽',그 이름에 걸맞게 대가 불에 탄 듯한 검정색을 띈다. 오죽하면 이렇게...
또한 큰 나무가 한 그루 있으니 이름은 배롱나무. 강릉의 시화(市花)로 꽃이 피는 기간이 100일이나 된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 자란 것이므로 나이를 합치면 600여년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사임당과 율곡이 이 곳에 지냈을 때도 있었던 나무라고 한다.
어제각으로 향하는 길에 집이 몇채가 더 있다. 대회에서 입상한 글씨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보이는 어제각. 이이의 책인 격몽요결과 그의 벼루가 보관된 곳이다.
보관된 책과 벼루가 보인다.
이제 주변을 둘러볼 차례, 율곡기념관으로 가보자.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한 기념관이다. 신사임당을 비롯하여, 이이와 그 가족에 관한 자료와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뒤 쪽 광장에서 신나는 사물놀이 공연이 있었다. 오죽헌과 잘 어울리는 공연이라 괜시리 신명이 났다.
바로 옆 강릉시립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가는 길에 거대한 신사임당의 상을 볼 수 있었다. 부제는 겨례의 어머니상이다.
그리고 그 옆에 민속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저 어린 아이들이 하는 방법을 알고 하는 걸까?
박물관에 입장하면,
으례 그렇듯이 선사시대부터 시작이다.
선사시대 파트 중 눈길을 끄는 것이 이 독널무덤. 항아리나 독을 두 개 맞붙여서 관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강릉시 초당동에서 발굴된 것.
그리고 고려시대의 불상인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머리가 없다. 보물 제81호.
바로 옆에 전시된 불상은 온전한 불상으로 국보 제 124호의 복제품이다.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강릉 강동면 남향진리 한송사 터에서 발견된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보살상이다. 왼팔은 약간 꺾겨 왼다리 위에 올려 져 있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천의를 걸치고 있으며, 마멸이 심하긴 하나 목에 삼도가 조각된 흔적이 남아 있다. 머리과 오른팔이 없는 불완전한 모습이지만 전체적으로 조각수법이 활달하며 사실적이다.
이 보살상은 왼다리를 안으로 넣고 오른다리는 밖으로 내어 발을 그대로 바닥에 놓고 있는데, 이런 자세는 함께 발견된 국보 제124호와 대칭을 이루는 모습이라서 두 보살상이 본존불의 협시보살이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특히 국보 제124호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과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성 등 강원 지역에서 발견되는 일련의 보살상들은 원통형의 높은 보관, 풍만한 상호, 입가의 미소 등 양식적인면에서 유사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허난설헌의 상량문과, 허균의 홍길동전도 볼 수 있다. 최초의 한글소설이긴한데,, 읽기가 어렵다.
그리고 옆의 토속민속관은 사진촬영이 금지였다. 다른 지역의 토속민속관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변에 있는 강릉 병산동 주거지. 철기시대의 주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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