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 돛배체험은 이름은 황포돛배이지만, 분명 엔진으로 가는 배이다.. 일전에 TV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소개된 바 있다. 그 때는 유시민이 배위에서 낙화암을 바라봤더랬지. 일단은 배를타기 위해 구드래 선착장으로 향하자
배를 타려면, 당연히 배 삯을 내야 한다. 왕복에 6000원이면, 비싼감이 없지 않지만 뭐 그럭저럭이다. 워낙 유네스코 백제역사지구들의 입장료가 싼 탓에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진다
백마강의 '눈치'라는 물고기가 선착장 주위로 버글버글댄다. 그 놈 밥 주려면 2000원을 주고 강냉이를 사서 맥여야 한다. 왠지 징그럽다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이들은 이런걸 참 좋아한다.
배가 도착하고, 승선이 시작된다. 배가 넓은 편이다. 앉아서 창밖을 바라봐도 좋고, 밖에 난간에서 풍경을 감상해도 좋다.
선착장을 떠나고, 백마강 유람 시작이다. 원래 강이름은 당연히 '금강'이지만, 부소산 일대 구간의 강은 백마강혹은 백강이라고 한다.
나당(羅唐)연합군의 물밀 듯한 침공에 7백년 백제사직이 무너지고, 망국의 치욕에 떨던 의자왕(義慈王)도 포로의 몸이되어 멀리 불귀의 땅 당경에 끌려가자 돌연 고요하던 백마강에는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나라 군선들이 부소산 근처에 접근하기만 하면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컴컴해지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진동시키며 돌풍을 몰아오고 호소와 같던 강물은 마치 바다의 노도와 같이 거세게 소용돌이 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당의 군선과 군병들은 물속에 삼켜졌다.
이런 당병들의 아비규환의 참변이 하루 이틀 계속되기를 거의 한달에 이르렀다.
사비성을 초토화 시켜버렸으니 공주의 웅진성에 머물고 있던 소정방(蘇定方)은 이 계속되는 참변의 소식을 듣자,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일관(日官)을 불러 그 원인을 알아보게 하였다. 일관은 소정방에게 "아무래도 백마강의 용신이 된 무왕의 혼이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하고 알리었다.
"뭣이 무왕의 혼이라니?"
"네, 의자왕의 부왕인 무왕(武王)은 원래 소부리의 궁남지(宮南池)에 살던 용이 그 곳 궁녀와 상통하여 낳은 자임으로 죽어서 용으로 다시 환생한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음, 그 말이 틀림이 없으렷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괴변이 강에서 일어날리 만무하옵니다."
"그렇다면 무슨 묘책이 없겠는가?"
"그 용을 낚아채는 방법이 있사옵니다만."
"아니 용을 어떻게 낚는단 말인가?"
소정방의 귀가 번쩍 들리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용은 백마의 고기를 가장 즐긴다 하오니, 그를 미끼로하면 틀림없이 용이 걸릴 것입니다."
소정방은 곧바로 소부리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일관이 일러준대로 부소산 북쪽 강물속에 솟아난 바위에 올라 타고 부하를 시켜서 만들게 한 철사 낚시줄에다 백마의 고기를 끼워 강물속에 던졌다.
한편 용은 백제 사직의 원수 당에 대한 앙갚음으로 매일 백마강 위의 하늘에 구름과 비바람을 몰고오랴, 또 강물에 파도를 일으키랴, 소용돌이를 발생시키느라, 몸이 닳도록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보니 피곤도 하고 몹시 시장기도 돌았다. 이 때 마침 눈앞에 그렇게도 좋아하는 백마의 날고기가 물 속에 떠내려 왔으니 "이게 웬 떡이냐."하고 용은 얼른 그 백마고기를 꿀꺽 삼켰다.
바위 위에서 낚시줄을 잡고 있던 소정방은 "옳지 걸렸구나!"하고 낚시줄을 당겼다. 놀란 것은 용이었다. 용은 아픔과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다.
소정방은 하마터면 물속에 이끌려 빠질 뻔 했으나, 발에 있는 힘을 다 주고 버티었다.
이렇게 기를 쓰며 당기는 소정방과 이끌리지 않으려는 용 사이에 옥신 각신 필사의 싸움이 계속되었다. 그동안 소정방이 올라 타고 있던 수중 바위에는 발자국과 낚시줄이 마찰되어 흠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낚시에 걸린 용의 기력은 시간이 갈수록 떨어져 가기만 하는데 소정방에게는 힘이 센 부하 장병 수명이 달려들어 가세하는지라 대세는 일변했다.
용은 물 아래 위로 출몰하며 발버둥을 쳤다. 마지막 기력을 다해 저항하는 소리를 높이며 낚시줄을 낚아 채었다.
그러나 끝내, 황금 비늘을 공중에 번쩍 빛내며 백마강 동쪽 마을에 떨어져 폭양에 썩기 시작하더니 그 지독한 썩은 내는 멀리 80리 떨어진 공주의 한 마을까지 진동하였으니 이 때부터 그 마을 이름이 「구린내」가 되었고, 소정방이 올라탔던 수중 바위도 조룡대(釣龍臺)라 이름 지어졌으며, 또한 용이 낚인 부근의 강 이름도 이 때부터 백마강(白馬江)이라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부여군 홈페이지 발췌
배가 가는 동안 선장님께서 백마강에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해주시니 이해가 빠르다. 듣다 보면, '알쓸신잡'에도 언급되었던 안내 녹음 방송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곧 고란사 선착장에 도착한다. 역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들은 입장료가 싸다! 성인 2000원
등산을 좀 하다보면, 금방 고란사가 보인다. 지붕공사를 하고 있어서, 안을 볼수가 없었다.
고란사는 백제 말기에 창건되었다고도 하고, 고려시대 때 궁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도 한다. 둘다 설이라 확실하지는 않은 듯 하다.
고란사는 절보다 유명한 것이 절의 이름의 유래인 고란초와 고란약수이다. 고란정이 꽤나 깊어 손을 뻗지 않으면 닿지 않는다. 조심조심하자. 수십번을 마셨지만, 전혀 젊어지진 않는다.
고란초는 강가 절벽이나 산지의 그늘진 바위틈 등에서 자라느 소형의 양치식물로 고란사 뒤의 절벽에서 자라기 떄문에 고란초라는 이름이 생겼다. 전설에 따르면 백제 임금이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 오게 하였다. 이떄, 고란약수터 주변에서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불렸는데, 약수를 떠 오는 궁녀들이 임금에게 바칠 물동이에 고란초 잎을 한두개 씩 물 위에 띄워 옴으로서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는 고란약수를 한잔 마시면 삼년씩 젊어 진다고 하며 약수를 마시고 갓난아기가 된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부여 부소산 낙화암 아래에 있는 고란사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약수에는 어린이가 된 할아버지의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아득한 옛적 소부리의 한 마을에 금슬좋은 노부부가 살았는데 늙도록 자식이 없어 할머니는 늘 되돌릴수 없는 세월을 한탄하며 다시 한번 회춘하여 자식 갖기를 소원했다.
그러던 어느날 할머니는 일산(日山:금성산)의 도사로부터 부소산의 강가 고란사 바위에는 고란초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에서 스며나오는 약수에 놀라운 효험이 있다는 말을듣고 그 다음날 새벽 남편을 보내 그약수를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다음날 일찍 약수터로 찾아가보니 할아버지는 없고 웬 갓난아이가 남편의 옷을 입고 누워있어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아차했다. 도사가 한잔 마시면 삼년이 젊어진다는 말을 남편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돌아와 고이 길렀는데 후에 이 할아버지는 나라에 큰공을 세워 백제시대 최고의 벼슬인 좌평에 올랐다고 한다.
고란사 뒤쪽 암벽에는 고란초가 자라고 있다. 고란초는 백제의 아픔과 정서가 밴 식물이다. 겨울에도 죽지 않는 기상은 마치 낙화암에서 순절한 백제여인의 굳건한 절개를 닮았다. 백제 임금님이 고란사 약수를 즐겨 마셨는데, 약수를 길러올 때 절벽에 자라는 싱싱한 고란초 잎을 띄워오도록 해서 그 물을 마셨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백제시대에 임금님은 항상 고란사 뒤편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약수를 애용하여, 매일같이 사람을 보내 약수를 떠오게 하였다. 하지만 매일 험한 부소산을 올라 고란사 뒤쪽 고란약수터에서부터 물동이를 가져오는 일이란 힘든일이었다. 그래서 다른곳에서 시간을 보내구 아무곳에서나 물을 떠다가 고란약수라 임금님께 올렸다. 하지만 고란약수의 물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임금님께서는 마침 고란 약수터 주변에서만 자라는 기이한 풀이 있어 이름을 고란초라 부르고 약수를 떠오는 사람이 잎을 하나씩 물동이에 띄워옴으로써 그것이 고란약수라는 것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백제임금은 이 약수를 즐겨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위장병은 물론 감기도 안걸리고 사셨다고 한다.
고란사에서 위로 400m 즈음 떨어진 곳에 백화정이 있다. 또 한번 등산을 해야한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 108호. 부여 부소산성 북쪽 금강변의 낙화암 정상부에 있는 육각의 정자건물이다. 1929년 당시 군수 홍한표의 발의로 부풍시사라는 시우회에서 세웠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소동파가 혜주에 귀양가 있을 적에 성밖의 서호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라는 시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부여외곽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낮은 산들이 어울려,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아주 일품이어서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대하는 듯하여 부여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명소이기도 하다.
백화정 안내판
힘들게 올라 왔건만, 백화정 마저 수리 중이다!
하지만, 올라온 보람이 있게도 낙화암 정상에서 바라보는 백마강의 풍광은 정말 끝내준다.
이제 다 둘러보았다면, 하산할 차례. 다시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똑같은 코스로 구드래 선착장으로 돌아온다. 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조룡대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