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먹을 수록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이 즐겁다. 특히나 문화재가 그득그득한 국립박물관을 둘러보는건, 여행지에서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 중 하나이다. 하지만 최고의 경험은 지역음식을 먹는 것
공주 시내에 있으니, 접근이 용이하다. 그리고 관람시간이 월별로, 요일별로 상이하니 주의하자.
국립공주박물관은 공주지역 문화재가 주요 전시품들인데, 가장 메인이 되는 문화재는 역시나 무령왕릉 출토품들이다.
박물관 외부 바닥에 옛놀이를 위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대게는 그냥 그림만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곳에는 친절하게도 하는 법까지 적혀있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이 이런걸 좋아할지 의문이다.
옥외전시물들을 즐비하게 한군데 모아 놓았다. 작은 탑, 석조불상, 비석의 기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옥외 전시물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석조 2점. 정식명칭은 대통사지출토 석조. 석조란 돌을 파서 물을 담아 쓰는 큰 물통인데, 절에서 물을 보관하거나 그릇을 씻는데 쓰였다고 한다.
부여의 박물관에도 이와 비슷한 생김새의 석조가 전시되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전시관 하나가 통째로 휴관이다. 꽤 오랜기간 동안 휴관인걸로 보아, 곧 큰 변화가 있을 듯 하다. 덕분에 계유명천불비상은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역시 국립공주박물관의 메인 전시관은 웅진백제실이니, 아직 실망하긴 이르다.
웅진백제실은 무령왕릉 출토 문화재를 제외 하더라도, 매력적인 유물들이 많은 곳이다.
수촌리 출토 닭머리 모양 호, 항아리 주둥이 모양이 닭머리 모양이 인상적이다. 굴식돌방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중국남조에서 만들어진 것을 백제 정부에서 지역 세력에게 준것이라 한다.
송산리고분군에서는 무령왕릉을 비롯한 고분들의 외부를 보았다면, 이 곳에서는 무령왕릉 내부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본격적인 국립공주박물관의 주요 전시품인 무령왕릉 껴묻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웅진백제실에는 무령왕릉 출토품을 전시해놓은 곳이 별도로 칸막이를 통해 연결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공간이 웅진백제실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넓다. 관문의 디자인 자체가 무령왕릉에 쓰였던 양식
가장 먼저 볼 수 있는건 무령왕동상. 이 모습이 공식 기준인데, 공주의 다른 유적지에 전시된 무령왕의 얼굴은 죄다 다른 모습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령왕릉 발굴작업 끝에 살아 남은 출토품들이 이 곳에 전시되어 있다.
아래 리스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국보들이 여기에 있나 알 수 있다.
특이한 석상 진묘수. 상상의 동물로서 악귀를 막는 수호수인 동시에 저승 안내의 역할을 하는 놈이라 한다. 왠지 아기 돼지 같은 생김새이다. 생김새와는 다르게 국보이다. 제162호.
무령왕릉의 널길에서 발견되었다. 진묘수를 무덤에 넣는 전통은 중국 한대에 유행하였으며, 무덤을 지키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신선세계로 인도하는 승선의 역할을 한다. 돌과 흙, 나무로 만들었고, 물소나 돼지 등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 진묘수는 머리에 불이 있고 몸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 입과 몸통 일부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로 붉게 칠했다. 각섬석암으로 만들었고, 무게는 48.2kg이다.
그리고 또 다른 국보. 묘지석이다. 송산리고분군의 많은 고분들 중에서 묘지석이 발견된 유일한 고분이 무령왕릉인데, 이 묘지석 덕에 이 능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알게되었다고 한다. 왕과 왕비의 묘지석이 한세트로 국보 제163호이다.
그리고 2017년에 새롭게 선보이게 된 왕과 왕비의 목관. 원래 측면판만 전시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10년여 동안의 복원 작업을 마치고, 올해 4월부터 전시를 시작했다고 한다.
[링크 : 한국일보_발굴 46년 만에... 실물 드러낸 무령왕릉 부부 목관]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 지배계층의 무덤 형식을 받아들인 벽돌무덤塼築墳이다. 무덤은 직사각형 터널 형태이며, 복도인 널길羨道과 무덤방인 널방玄室을 갖춘 구조이다. 벽체는 가로 4단, 세로 1단四平一竪式, 천장은 가로 3단, 세로 1단三平一竪式으로 벽돌을 쌓았다. 벽에는 등을 놓기 위한 자리인 등감燈龕을 5개 만들었는데, 동벽과 서벽에 각각 2개, 북벽에 1개를 만들었다. 여기에 사용된 벽돌은 부여 정동리가마井洞里窯址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은 왜倭의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것으로 알려진 금송金松으로 만들었다. 관 뚜껑은 중앙 판재를 중심으로 계단식으로 겹치게 하였는데 왕은 5개, 왕비는 3개를 사용하였다. 왕과 왕비의 목관에 사용된 못과 고리는 재질과 형태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쪽벽에는 목관에 사용되었던 관꾸미개들이 잘 정렬되어 전시되어 있다.
왕비의 머리 부근에서 발견되었다는 은잔. 사진에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신선 용 등이 세밀하게 세겨져 있다.
왕의 금뒤꽂이, 관꾸미개, 금귀걸이 세트. 하나하나가 다 국보이다. 특히 관꾸미개의 모양은 공주시내를 비롯해 유네스코 백제역사문화지구 등지에서 종종 보았던 그 모양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았던 신라의 금 세공술에 뒤지지 않는 치밀하고, 화려한 모양이다.
왕의 귀걸이는 하트모양의 금 장식이 달려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도 사람의 심장을 하트모양으로 인식했던 것일까?
관꾸미개 : 왕의 머리 부분에서 2점이 발견되었다. 얇은 금판을 오려 인동꽃 무늬를 맞새김하였는데, 역동적이고 강한 상승감을 준다. 왕비의 관 꾸미개와는 다르게 구멍을 뚫고 금실로 달개步搖를 달아 화려하게 만들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 고이왕조古爾王條에 “왕은 자줏빛 큰 소매가 달린 도포를 입고 금꽃으로 꾸민 검은 비단 모자를 썼다.王服紫大袖袍…金花飾烏羅冠…”라는 기사를 뒷받침해 준다.
왕비의 귀걸이 또한 국보. 왕의 귀걸이 보다 왕비의 귀걸이가 더 화려해야 맞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지만, 그 시절에는 왕이 더 화려해야 했나 보다.
귀걸이가 왕보다 슬쩍 덜 화려한 대신 왕비에게는 한 쌍의 팔찌가 있다.
왕비의 왼손에 끼워져 있었던 것으로 2점이 발견되었다. 주조鑄造로 형태와 용을 만든 후 비늘을 정으로 쪼아 입체감과 생동감을 더하였다. 팔찌의 안쪽에는 톱니무늬가 있는 은판을 덧대었는데, 이 은판에는 대부인大夫人을 위하여 경자년庚子年(520년)에 ‘다리多利’라는 장인이 팔찌를 만들었고 230주이主耳를 들여 만들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서 주이는 무게의 단위로 추정되며, 팔찌의 무게는 각각 166g, 167g이다.
발굴전의 왕과 왕비의 목관 내부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듯 하다. 베개와 발받침대는 망자의 신체를 고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저 딱딱한걸 베고 자지는 않았을 테니깐
박물관 안에는 전시관 말고도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도 준비되어 있다. 이름하야 우리문화 체험실. 모션인식이 되는 기기들과 VR을 이용한 체험존 등이 있다. VR체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아이들 사이에 줄서기가 민망하여, 금방 포기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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