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는 백제가 당의 소정방 의해 무너지기까지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다. 그런 탓에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비롯해 많은 유물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물건은 뭐니뭐니 해도 백제 금동대향로이다.
금동대향로의 진품을 보관하고 있는 곳인,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은 이유의 90%는 바로 그것 때문이다.
군청에서 멀지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하지만 부여군 자체의 접근성은...
가장 중요한 관람시간. 요일별로 관람시간이 상이하다. 그리고 홈페이지에서 전시실 해설서비스에 대한 안내를 볼 수 있다. 이런게 있는 줄도 모르고, 방문했던 내가 어리석다.
본관앞 공연장, 어린이박물관의 건물이 있다. 군의 문화공연 장소로 이용되는 곳인가 보다.
그 외에도, 야외 전시품들이 몇 점씩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커다란 한 비석이다. 이름하야 보광사대보광선사비. 백제의 문화재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비석은 의외로 고려시대 비석이다. 백제의 비석이 이렇게 멀쩡이 현존할리도 없고.. 보광사의 중창을 기념하는 비석이라 한다. 보물 제 107호
이제 본관으로 입장. '카메라금지' 모양 안내판이 있어 흠칫 놀랐으나, 자세히 보면 플래쉬 금지이다. 자애롭게도 관람료가 무려 무료! 내부에 있는 문화재들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처사. 만원이상이라도 받아도 되지 않나 싶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보았던 석조와 비슷하게 생긴 친구가 중앙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세월의 부침에 한쪽 귀퉁이가 깨졌다. 석조 한쪽에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새겨진 것 처럼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하였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보물 제194호.
1관부터 관람을 시작.
여느 역사 박물관처럼, 역시나 시작은 석기, 토기, 동기, 철기이다.
그 중 특이한 것이 이 대쪽모양동기. 다른 것들에 비해서 유난히 빤딱거리며 상태가 좋다. 당시 신앙문화와 관련있는 유물이라 한다.
1978년 4월 충청남도 예산군 동서리에서 대나무를 세로로 쪼갠 모양의 24.5cm 크기의 대쪽모양 동기 완형 1점과 반쯤만 남은 2개분이 발견됐다.
한반도에서 청동기가 본격적으로 주조되기 시작한 서기전 4세기말에서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2세기 중엽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검파형동기(劍把形銅器)’라고도 부른다.
대쪽모양 동기는 위 아래의 양 끝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진다. 앞면 전체에는 한국 동검문화의 특징인 평행세선문(평행으로 폭이 좁고 가늘게 된 줄무늬)와 점줄무늬 등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다. 위 아래의 가운데에는 새끼줄을 꼬아 만든 둥근 고리가 달려있어 다른 물체에 맬 수 있게 되어 있다.
뒷면은 우묵하게 들어가 빈 대나무 속 같으며, 대쪽모양 동기의 윗부분에는 작은 반점으로 오른손 모양이 새겨져 있다. 독특한 형태의 이 동기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손의 표현은 시베리아 지역의 샤머니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소이다. 이 동기는 부여가 시베리아 일대의 샤머니즘 문화와 관련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문화홍보원 홈페이지 발췌
그리고 본격적으로 2관에서 백제의 유물들을 보자. 금동대향로를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체적으로 도읍을 한 곳에서 계속 유지했던 신라와 백제는 천도를 달리 두번이나 하였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유물 숫자가 국립경주박물관에 비해 수가 적었다. 백제가 신라보다 일찍 패망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부여 능산리 석조사리감. 능산리 정터의 목탑자리 아래에서 발견되었고, 출토 당시 아쉽게도 사리감은 손상된 상태로 내부의 사리기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리를 봉안한 연도와 공양자가 분명하고, 백제의 절터로 창건연대가 유물에 의해 밝혀진 사례로 그 중요성이 커, 국보 제288호.
사택지적비. 백제 의자왕 때 사택지적이 세운 비석. 충남 유형문화재였다가, 2014년 보물 제1845호로 승격되었다. 1
글자체는 구양순체로 새겨져있으며 문장은 육조시대의 사륙병려체를 따랐다. 사택지적비에는 "금을 캐어 진귀한 집을 짓고 옷을 파내어 보배로운 탑을 세웠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사택지적이 벼슬에서 물러난후 불교에 귀의 하려고 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또한 도교의 허무주의가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은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라는 문구에 들어나는데 이를 통해 백제 후기에 도교도 곳곳에 전파 되었음을 알수가 있다. 다른 유물로는 부여에서 발굴된 산경전(山景塼)에는 도교를 상징하는 삼신산(三神山)이 그려져 있었다.
이제 드디어 금동대향로를 볼 차례. 두근두근 전시관 안에 백제금동대향로를 위한 방이 별실로 마련되어 있다.
출토당시 이야기 [링크 : 직썰 _ 1993년 12월 23일 논바닥의 보물 세상에 공개되다]
주차장 확장을 위한 공사 전, 매장 문화재 조사에서 나온 유물이다. 발견당시 진흙에 박혀있는 상태로 출토되었는데, 이것이 산소차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되었다. 당연히 발견되자 마자, 세간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어렸을 적 학교 국사책에서 본 그대로의 모습이다.
향로에 사뿐히 올라 선 봉황. 선계로 통하는 닭이란 설도 있다.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기공을 찾을 수 있다. 봉황 가슴에도 구멍이 있다. 향로 이기 때문에, 연소를 위한 구멍이다.
몸체를 지탱하는 다리의 용부터 시작해서, 몸체의 온갖가지의 동물들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까지 섬세하면서 화려하다. 이런 세련된 묘사들이 현재까지 손상이 거의 없이 보존되었다는 것도 놀랍다.
이제 다른 관으로 이동. 왠지 볼건 다 봤다라는 느낌이라 시들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유독 삼국 중 타국과의 교류가 많았던 백제.
그래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불교관 안쪽에 작은 소조불들을 모아둔 곳에 있는데,
이 곳에 금동관음보살입상이 손을 흔들고 있다. 국보 제293호로써, 유려한 신체 곡선이 눈에 띈다.
다음관은 기증 문화관.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들. 백제시대의 것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대의 토기들이 즐비하다.
별관, 기획전시실에는 왕흥사 사리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왕흥사에서 발견된 사리기, 가장 바깥부터 청동 사리함 - 은제 사리호 - 금제 사리병- 세겹으로 구성되어있다. 불교 경전에 사리 안치시 안쪽으로 갈수록 귀한 재질의 용기를 쓰도록 하고 있어 그를 따른 것이라 한다.
그리고 사리함을 열 때 당시의 모습에 관한 자료이다. 무턱대고 렌치로 열어버린 것이 아니라, 열기전부터 X-선 촬영 등 많은 조사 이 후, 개봉하였다고 한다.
- 승격사유: 부여 사택지적비는 백제 의자왕대의 인물인 대좌평 사택지적이 은퇴후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비석(碑石)의 형태를 갖춘 유물로서 백제인의 손으로 제작된 유일한 경우이다. 특히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사택씨(沙宅氏) 출신의 사택지적(沙宅智積)은 《일본서기》에서 대좌평(大佐平)의 지위로 왜국에 사신으로 파견된 사실이 확인되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사찰의 전각(殿閣)과 탑상(塔像)을 조성하며 새긴 비석인 만큼, 문화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된다. 사택지적비는 백제 후기 귀족들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고 백제 관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 격조높은 문체와 서법은 백제의 수준높은 문화를 잘 보여준다. [본문으로]
'국내 여행. 갈 곳과 먹을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파스타 :: 작은 식당 속 놀라운 맛, 위드 구스토 'WITH GUSTO' (0) | 2017.10.03 |
---|---|
대구 여행 :: 매너티가 있는 곳, 대구 얼라이브 아쿠아리움 (0) | 2017.09.15 |
대전 맛집 :: 탄방동, 1인 운영 식당, 비스트로네오 (0) | 2017.09.02 |
공주 여행 :: 무령왕릉 안의 이야기. 국립공주박물관 (0) | 2017.09.01 |
천안 여행 :: 광복절을 앞두고 찾은 독립기념관 (1) | 2017.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