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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향수 내 어릴 적 명절은 대단한 행사였다. 명절 전날 목욕탕에서 때를 벗겨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음날 아버지 차로 시골길을 지나, 산골짜기 마을 고모할머니댁에 도착한다. 마당에 들어서면 아궁이에 매캐한 장작 타는 냄새가 마중 나온다. 작은 집에 친척들이 스무 명 가량 모인다. 어머니를 포함한 친척 아주머니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친척 아저씨들은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이거나 잡담을 나눈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모인다. 추석엔 산에 밤송이를 주으러 가기도 하고, 설엔 언 논에서 썰매를 타기도 한다. 여느 집처럼 명절에는 탕국에 각종 전, 나물을 먹는다. 명절에 따라 송편이나 떡국이 추가되기도 한다. 30대 중반. 아이가 두 명이 생겼다. 네 가족이 동남아에서 산다. 명절에 한국을 갈 수 없을 때가 대부분이다. 첫..
‘23 독서 결산! + 인상 깊은 책 Best 5 지난 해 읽은 책은 56권. 2022년의 49권과 비슷한 양의 책을 읽었다. 개인적인 독서 목표 중 하나였던 수호지 (이문열 평역)를 다 읽기를 완수했다. 열 권짜리 책이라 완독이 쉽지 않았다. 6,7권 쯤 읽을 때는 중국 고전문학이 주는 특유의 반복성과 지겨움 때문에, 책을 덮을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허나 읽어 놓은 게 아까워서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주해버렸다. 송강이 사로잡은 호걸을 화를 내며 포박 풀기, 노지심과 이규의 개망나니 짓, 일기토에서 거짓 도망 등… 같은 플롯이 끝없는 돌림노래처럼 반복되어 내 참을성을 시험했다. 원래 좋아하던 추리소설도 꾸준히 읽었다. 학창 시절 이 후로 간만에 읽은 애가서 크리스티의 작품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다섯 마리의 돼지]은 여전히 훌륭했고, 그녀를 추리소..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악역이나 지구적인 위기가 없는 SF 개인사. SF하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스페이스 오페라’, 삼체와 같은 탈지구급 소재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더 익숙할 수밖에 없는 수필과 같은 개인의 이야기가 SF와 섞이니, 새로운 느낌을 준다. 이 이야기도 그렇다. 표면으로 드러나는 악당이 없다. 누군가 지구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를 곱씹어보면 악당이 슬며시 등장한다. 사회를 이룬 인간이다. 로빈의 아빠 시오는 로빈에게 약물을 시도하려는 교육 정책과 갈등을 빚는다. 얼리사는 동물권을 부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투쟁한다. 우주학자들은 인간의 정책 때문에, 거대한 프로젝트가 꺾인다. 로빈은 주변의 모든 인간 제도와 부딪힌다. 얼리사는 이미 죽었다. 로빈은 모든 공감능력을 잃고 방황하다 사고로 죽는다..
백조와 박쥐 독후감, 시대를 관통하여 교차하는 운명 두 사건이 얽힌다. 공소시효가 끝난 오래된 살인사건과 현재의 살인. 두 사건 모두의 범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나이가 나타나 자백한다. 그의 자백을 납득하지 못 하는 아들과 피해자의 딸. 그 둘은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을 원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숨을 내쉬듯 작품을 내놓는 작기이다. 다작 작가이면서 동시에 인기작가이다. 본격적인 추리소설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이다. 트릭이나 알리바이 같은 요소를 다루기 보다, 서사를 앞세워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술술 읽히게 하는 작품이다. 추리소설 매니아 뿐만 아니라 보통의 독자들도 끌어당기는 서사가 그의 작품의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독자가 작품 종반부 직전에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까? 구라키는 서사상 아니고, 피해자의 가족도 당연히 제외한..
황금방울새, 가까우면서 가질 수 없는 꿈 1675 페이지의 대작이다. 사건으로 말하자면 대단할 것도 없다. 미술관 폭발사고가 일어 났고, 그 때 엄마를 잃은 소년이 사고 당시 그림 하나를 가지고 오게 된다. 믿던 친구 놈이 그림을 훔쳐 암시장에서 거래하다가 잃어버린다. 그림을 다시 찾으러 네덜란드로 가서 사람까지 죽였지만, 그림을 찾질 못 한다. 친구 놈이 신고하여 포상금을 두둑하게 챙기고 주인공과 나눠 가진다. 신고로 인해 그림은 다시 미술관으로 돌아간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를 1600여 페이지의 소설로 만든 것에는 일단 자세한 묘사가 한 몫 한다. 책에서 시온이 앤디네 아빠 바버씨를 처음 만나는 장면의 묘사를 보자. .....바버 씨는 아주 약간 이상해 보였고 어딘가 창백하고 은빛이 나는 느낌이었는데, 꼭 코네티컷의 ‘정신병자 양성소’(아저..
김훈, 하얼빈 포수, 무직, 담배팔이가 구한말 일본제국의 일인자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다. 열사 안중근의 이야기이다. 알려져 있는 이야기라 내용적으로는 평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틀렸다. ‘천주교’가 의외로 깊숙이 이 사건의 정신적 부분에 개입하고 있었다. 뮈텔 주교와 빌렘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세력이 안중근 사건에 관여 했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르러서야 천주교의 잘못된 과거에 용서를 구했다는 것이 굉장히 의외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압축적으로 담담하게 서술하였다. 최대한 인물, 사건, 사물에서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안중근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그리하여 김훈 작가가 보여준 안중근은 어릴 적 읽던 위인전의 안중근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포수였고 무직인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
[마이너 없이 메이저 없다] 행복의 비결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마음이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할까?’ ‘왜 나만 이런 것일까?’ ‘행복한 삶을 이뤄내고 싶다.’ 등의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던 시절이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행복에 집착했다. 그 반작용으로 ‘행복해지려 너무 애쓰지 말자’ 라고까지 생각했다. 행복 강박에 매몰되어 되려 행복해지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행복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니, ‘결국 그러면 뭐 어떻게 해야 하나?’ 로 생각이 이어졌다. 행복한 삶을 의도하지 않고, 저절로 행복해지기를 바래야 하는 것인가? 행복은 파랑새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에는 쉽게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들이 숨어 있다. 행복을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의도적으로 ..
역사는 지리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졌다. <지리의 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대표작인 는 뉴기니에 사는 한 청년의 물음으로 시작된다. “왜 서양인들은 크고 멋진 배를 타고 다니는 반면에, 우리 동네 사람들을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다니는가?” 작가의 대답은 지정학적 운이다. 가축화 할 수 있는 동물들이 서식하는 위선을 따라 넓게 펼쳐진 유라시아 대륙. 그 중에서도 초승달 곡창지대와 가까워 일찍이 문명을 시작했던, 지중해 주변의 유럽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건 모두 지리라는 이유라고 작가는 말한다. 도 대답은 동일하다. 세계의 다양한 사건들을 작가는 지리라는 영사기를 통해 설명해 준다. 는 선사시대부터 마크로 하게 바라 본 빅사이언스라면, 은 주로 근,현대의 사건들을 보여주는 마이크로 스케일이다. 한반도에 관한 작가의 견해는 매우 흥미롭다. ‘해결 불가능..